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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숲을 음악에 담다, 백정현아티스트 집중 조명/한국의 인디뮤직 2020. 2. 17. 13:21728x90반응형
쉼 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굴레에 지칠 때, 사람들은 쉼표를 갈구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으레 자연 속 풍경을 찾게 되고, 그런 이유로 한국 사람들은 제주도를 찾게 된다. 천혜의 자연을 유지하고 있는 제주도를 음악 속에 담아낸 아티스트가 있다. 여러 가지의 어려움으로 제주도를 직접 찾지 못할 때, 그녀의 음악을 듣는다면 한 줄기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피아니스트 백정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기대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 자유로운 모습만큼, 백정현의 음악에는 따스한 인간미가 넘쳐흐른다. 백정현이 가장 대중들에게 알려졌던 시절인 밴드 윈디시티(Windy City)의 키보디스트 시절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드러머 김반장을 주축으로 레게 음악을 주로 해 왔던 윈디시티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왔던 밴드이다. 그 당시 윈디시티의 멤버들 모두가 그랬겠지만, 백정현의 키보드야말로 한국인들만이 가진 고유한 흥을 가장 맛깔나게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윈디시티의 '잔치레게'의 간주 중 백정현의 키보드 솔로를 들어본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백정현은 윈디시티 이전, 밴드 '수리수리 마하수리'를 결성하여 첫 EP 앨범인 '지구음악'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는 백정현을 비롯하여 중동음악을 공부한 '미나'와 밴드 '오마르와 동방전력'의 핵심 멤버인 모로코 태생의 뮤지션 '오마르'의 3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음악은 국적도, 장르도, 그 어떤 것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세 가지 색깔이 만나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독특한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한 백정현의 고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 것만이 우리 것이라는 독선과 아집으로 지켜내려는 것이 아닌,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의 것이라 하더라도 과감하게 수용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이 독창적인 시도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2016년, 백정현은 오롯이 혼자만의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했다. 바로 첫 정규 앨범인 [제주, 숲의 음악]이 그것인데, 이전까지 백정현이 선보여 왔던 독창적이면서도 유니크한 매력과는 결을 달리 한다. 오히려 명상음악에 가까운데,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듯한 느낌으로 앨범을 구성하였다. 피아노와 자연의 소리만으로 가득 채운 이 앨범을 아침에 듣고 있노라면 마치 제주의 숲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진정 일상 속에서 찾는 자그마한 쉼표가 아닐 수 없다.
작년에 백정현은 자신의 이름을 건 두 번째 정규 앨범 [시간이 멈춘 순간들]을 발표했다. 피아노와 자연의 소리만으로 단촐하게 구성한 전작과는 달리, 이 앨범에는 조금 더 다양한 사운드 소스들을 사용하여 소리의 다양성 측면에서 진일보한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듣는 이를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쿨-다운 바이브는 여전한데, 백정현이 제주에 머물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제주 특유의 나른한 시간들을 음악으로 풀어낸 것이 아닐까 한다. 특히 백정현이 직접 소개한 이 앨범의 글을 읽어 보면, '[시간이 멈춘 순간들]은 이런 일상의 선물처럼 호들갑스럽지 않게 찾아왔다가 다시 고요하게 사라지는 음악들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역시 자신의 음악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내 곧 사라질 음악'을 태연하게 만들 수 있는, 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백정현의 이유 있는 배짱이 부럽기까지 하다.
누군가에게는 '이내 곧 사라질 음악'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호들갑스럽지 않은 일상의 선물'이다. 억지로 찾아 헤메지 않고도, 일상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선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잊기 쉽지만, 결코 잊히거나 버려질 염려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 백정현의 음악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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