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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후의 천재 싱어송라이터, 유재하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명반 산책 2020. 3. 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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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1987)

     

    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1987)

    오랜만에 가요 명반으로 인사드리게 되었다. 세상에는 국적과 시대를 초월한 많은 명반들이 있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명반은 아무래도 이 앨범, 故유재하의 1집 [사랑하기 때문에]일 것이다. 이 앨범이 갖는 가치와 의의에 대한 논의는 이미 충분히 있어 왔지만, 여러 번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도 충분히 다루어 보려 한다.

     

    유재하(1962~1987)

    유재하는 1962년 6월 6일 안동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작곡과에 진학하여 전문적인 작곡 교육을 받는다. 그 당시만 하여도 프로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음악 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유재하는 동료와 선배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굉장한 엘리트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일례로 1984년부터 당대 최고의 밴드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키보디스트로 활약하게 되는데, 그때 유재하의 나이가 스물 셋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음악계에 갓 뛰어든 스물 세 살짜리 풋내기와 조용필이라는 당대 최고의 거장이 한 그룹에서 함께 활동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유재하는 조용필에게 자신의 곡 '사랑하기 때문에'를 헌정하는 등 밴드 내에서 매우 선 굵은 존재감을 발휘하게 된다. 유재하야말로 타고난 음악성과 체계적인 교육이 시너지를 이루어 만들어진 천재인 것이며, 이 천재성을 알아보고 과감히 밴드의 멤버로 발탁한 조용필의 안목 또한 예사롭지 않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의 활동이 끝나고, 유재하는 대학을 졸업한다. 졸업 후 함께 활동하게 된 멤버는 다름아닌 김현식이다. 그러니까, 2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에 이미 당대 메이저와 언더그라운드의 최고 거장들 모두와 함께 활동해 본 셈이다. 김현식은 2집 [사랑했어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언더그라운드의 대스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스타 가수로서의 삶을 지속하려 하기보다는, 그 당시 연주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를 다투던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여 다음 앨범을 만들길 바랐다. 그렇게 만들어진 밴드가 바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었고, 보컬의 김현식, 기타의 김종진, 드럼의 전태관, 베이스의 장기호, 그리고 키보드의 유재하가 그 초창기 멤버였다.

     

    이 시절,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김현식이 밴드 멤버들 모두에게 '앨범에 실을 곡들을 만들어 오라'는 주문을 했고, 멤버들은 김현식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곡을 만들어 바쳤다(?). 이때 유재하는 훗날 자신의 1집 앨범에 실릴 모든 곡들을 김현식에게 주었던 반면, 기타의 김종진은 자신의 인생 최초의 자작곡인 [쓸쓸한 오후]라는 한 곡을 선물하였다. 하지만 김현식은 밴드 멤버들 모두를 공평하게 아끼는 마음으로 한 곡씩만 채택하여 앨범에 실었고, 유재하는 서운하고 마음에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다고 한다(이는 2009년 MBC '라디오스타'에 김종진이 출연하여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유재하의 섭섭한 마음도, 리더로서 공평함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김현식의 입장도 모두 이해가 되지만, 유재하의 탈퇴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이때 유재하가 탈퇴한 자리를 채운 멤버가 박성식인데, 이 박성식이 만들어 준 명곡이 바로 [비처럼 음악처럼]이었다. 참 드라마틱한 전개가 아닐 수 없다.

     

    TV에 출연한 유재하의 모습. 이 방송은 유재하의 처음이자 마지막 방송이 된다.

    그렇게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탈퇴하고 나서 만든 앨범이 바로 이 1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이다. 이 앨범의 작업 과정은 참으로 경이로운데, 앨범에 들어간 모든 소리가 다 유재하의 손끝에서 나왔다고 한다. 작사, 작곡, 편곡, 가창, 연주까지 말이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셀프 프로듀싱(self producing)'이라고 하는데, 이 앨범이 바로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의 셀프 프로듀싱 앨범이 된다. 또한 이 앨범의 곡들은 하나같이 한 편의 시와 같은 감성적인 노랫말을 자랑하는데, 노랫말에 담긴 절절한 이야기는 모두 유재하가 당시 사랑했던 한 여인에게 바치는 내용이라고 한다. 음악을 주무르는 솜씨도,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담아내는 솜씨도, 어느 하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해냈다. 이 앨범은 훗날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에서 2위라는 높은 순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음악을 들어보면 괜히 높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故유재하(왼쪽)와 故김현식(오른쪽).

    하지만 이 앨범을 발표한 후 얼마 뒤인 1987년 11월 1일, 유재하는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스물 여섯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뮤지션들이 그의 너무도 갑작스럽고 이른 죽음을 애도하였지만, 특히 김현식이 유독 많이 슬퍼하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유재하가 자신의 밴드를 떠나게 된 데에 아무래도 마음의 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운명 같은 굴레가 있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정확히 3년 뒤인 1990년 11월 1일, 김현식 또한 간경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유재하가 이 앨범에 담은 노래들이 아기자기하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아주 미니멀하지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직까지도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것은 셀프 프로듀싱도 아니고, 소서사도 아니며, 바로 '진심'이기 때문이다. 음악에 자신의 진심을 오롯이 담아냈기 때문에 듣는 이의 마음에는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기교와 기술은 대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마음에 오래 남기는 어렵다. 하지만 진심을 담은 노래는 그것이 설령 기술적으로 서툴더라도 듣는 이의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다. 유재하의 음악이 오랜 세월 동안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유재하의 이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통해 록이나 트로트 일색이었던 한국 가요는 감성적인 측면에서 팝 발라드라는 새로운 축을 형성하게 된다. 몇 년 후, 퓨전 재즈와 팝 발라드를 위시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는 김현철, 유희열, 조규찬 등의 뮤지션들도 유재하라는 굳건한 뿌리에서 파생된 가지와 같은 존재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고도 아직까지 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대단한 천재 뮤지션 유재하. 그는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남아 오래도록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게 되리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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