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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의 대모 양희은과 기타의 거장 이병우가 함께 만든 아름다운 노래 모음집, [양희은 1991]명반 산책 2020. 1. 24. 08:33728x90반응형
양희은 - 양희은 1991 (1991)
굴곡 많은 한국의 대중음악 역사의 산증인이자 한국 포크의 대모(大母). 지금도 여전한 감수성과 가창력으로 현재진행형 레전드로서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뮤지션. 양희은의 7집 앨범, [양희은 1991]이다.
데뷔곡이자 전설적인 명곡 [아침이슬]로 1971년에 데뷔하여, 2020년 현재 기준으로 데뷔 49년차다. 내년이면 데뷔 50주년을 맞이하는 거장 중의 거장인 것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저 '예능 가끔 나오는 노래 잘 하는 아줌마' 정도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겠지만 양희은은 그렇게 하찮고 보잘것없게 소비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부디 양희은의 앨범들을, 그게 어렵다면 이 앨범 한 장이라도 제대로 듣고 양희은이라는 뮤지션이 가진 거대한 가치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럼 이 앨범 얘기, 한 번 해 볼까. [양희은 1991]에는 양희은 하면 으레 생각날 만한 메가급 히트곡 하나가 수록되어 있다. 바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이다. 이 곡은 달콤하고 황홀함으로 대표되는 사랑이라는 가치가 가진 철학적인 이면에 대하여 아주 쓸쓸하고 외로운 톤으로 노래한 곡이다. 노래라기보다는 이야기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곡이 가진 특유의 관조적인 무드 때문인지, 사랑의 달콤함에 취해 정신없는 사람들보다는 사랑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말고도 이 앨범에는 명곡들이 많다. 첫 곡인 [그해 겨울]을 들어본다면 양희은이라는 보컬리스트가 얼마나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렇게 강약과 완급조절을 절묘하게 할 수 있는 보컬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잔잔한 반주 위에서 드라마틱하게 노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양희은은 그 어려운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뛰어난 보컬리스트이다.
또한 아이유가 리메이크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을 아침]도 있다. 이 곡을 아이유의 리메이크 버전으로만 접하고 원곡을 아직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원곡도 함께 듣기를 권한다. 아이유의 리메이크 버전도 굉장히 훌륭하지만, 양희은의 원곡은 단순히 감정을 담은 것이 아닌,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훨씬 깊은 차원의 '정서'를 담은 듯 보인다.
이 밖에도 [그리운 친구에게], [11월 그 저녁에], [나무와 아이], [저 바람은 어디서] 등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이 명곡 반열에 오를 만하다. 앨범의 곡들이 공통적으로 함의하고 있는 정서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많은 것들을 데려온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 이로 인한 상실감과 그에 수반되는 외로움, 그리고 결국 이 모든 걸 안고 가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체념... 양희은은 이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마치 득도한 듯 노랫말을 읊조린다. 울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데에서 더 큰 슬픔이 전해지는 것 같다.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는 [잠들기 바로 전]이라는 이색적인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노래가 아니라 내레이션 트랙이다. 프랑스의 명작가 생텍쥐베리의 명작 [어린 왕자]에 나온 구절들을 양희은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 트랙을 듣고 나면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읽으면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이 곡을 들은 김에, 올해는 반드시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마무리하며 덧붙일 말은, 이 앨범을 아침에 듣기를 권한다. 특히 촉촉하게 비가 내리는 아침이라면 더욱 좋다. [가을 아침]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앨범은 고요한 아침과 매우 잘 어울리는 소리들을 내고 있다. 과하지 않고, 튀지 않지만 커다란 울림을 가진 이 앨범의 소리들은 쓸쓸한 정서를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들은 슬프거나 애수에 젖지 않게 해 주는,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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