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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숨은 명반] 이소라의 여덟 번째 정규 앨범, [8]명반 산책/숨은 명반 소개 2022. 2. 8. 08:47728x90반응형
tracklist.
01. 나 Focus
02. 좀 멈춰라 사랑아
03. 쳐
04. 흘러 All Through The Night
05. 넌 날
06. 너는 나의
07. 난 별
08. 운 듯목소리는 지문과 같아서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 다르다고 한다. 그 다름 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존재감을 가지는 목소리만이 '보컬'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수 이소라의 목소리는 기라성 같은 보컬리스트들 중에서도 더욱 깊고 짙은 오리지널리티를 가진다. 대중들의 호불호는 갈릴 수 있으나, 대중들 중에서 그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의심을 품는 이는 아직까지 아무도 만나보지 못했다.
가수 이소라에 대해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분명 있을 것이다. 눈을 감고 손을 무릎에 얹은 채 차분하게 앉아서 비음 섞인 목소리로 서정성 짙은 노래를 들려주는, 그러다 가끔 올라오는 감정에 울컥하여 노래를 중단하기도 하는, 자신의 노래에 만족하지 못하여 공연을 보러 온 모든 관객들에게 공연비를 환불해 주기까지 하는. 이러한 여러 단면들을 살펴보아도 이소라는 노래 하나에 진심을 다하는 가수다.
그렇다면 이소라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이 앨범이 놓이는 위치는 어떠한가? 흥행의 결과만 놓고 보자면 단연 실패작이다. 실패의 원인을 따져 보자면? 대중들이 기억하는 이소라의 이미지를 이 앨범을 통해 보란 듯이 깨부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앨범이 '실패작'이라고도, 이소라가 '실패'를 겪었다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이 앨범은 이소라의 모든 앨범들 가운데 가장 높고 고결한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앨범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이소라는 뛰어난 작사가이기도 하다. 직접 곡을 쓰지 않고도, 자신이 쓴 가사의 높은 완성도 덕분에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한철, 정순용, 김민규, 임헌일, 정준일, 정지찬 등 이 앨범에 참여한 작곡가들은 이소라로부터 몇 가지 오브제를 추천받고, 이를 통해 떠오르는 이미지를 살려 곡을 써 주기를 부탁받았다고 한다. 그 오브제는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그림 9장, 록 밴드 데드 웨더(Dead Weather)의 앨범 등이었다. 하나같이 추상적이고 거친 질감의 오브제들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앨범이다.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이라 앨범 제목도 [8], 트랙도 8트랙이 수록되었나 보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록'이다. 정준일 작곡의 2번 트랙 '좀 멈춰라 사랑아'는 피아노로 주로 작곡하던 정준일이 록 밴드 사운드로 작곡한 곡이다. 3번으로 이어지는 임헌일 작곡의 '쳐'의 후주를 꼭 들어보길 바란다. 출중한 연주력으로 정평이 난 기타리스트 임헌일의 육중한 기타 솔로가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렇다고 록 사운드로만 점철되어 있느냐 하면, 앨범의 후반부에서는 힘을 좀 빼는 듯한 양상이 보인다. 7번 트랙 '난 별'은 작곡가 정지찬이 파리 여행 중 우연히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는 한 남자를 보고 만든 아름다운 록 발라드이다. 이 곡을 만들기 위해 이소라와 너무 오래 통화를 해서 '아직도 이소라를 생각하면 한쪽 귀가 뜨거워지는 것 같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곱씹어 보자. 너무나 낭만적인 표현 아닌가?).
이소라가 록을 시도한 예는 처음이 아니다. 2집의 '화'나 3집의 '너의 일', '나의 일' 같은 트랙들만 보아도 강렬한 메탈 사운드와 어우러진 이소라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고, 5집부터 본격적으로 모던 록 사운드를 도입하는 것만 보아도 이소라의 록 지향성은 그리 갑작스럽지 않다. 이소라를 오래 본 팬이라면 8집에서의 행보는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소라의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다.
모 경연 프로그램에서 보아의 히트곡 'No.1'을 록으로 편곡하여 내놓은 뒤 대중들의 반응을 기억하는가? 팬들이야 그러려니 했겠지만, 그걸(?) 처음 본 대중들의 입장은 충격과 공포였다. 서정적인 노래를 주로 들려주었고, 장르적으로는 재즈나 발라드에 특화되어 있는 줄 알았던 보컬리스트가 거친 록 사운드 위에서 마치 주술사처럼 위압적으로 노래했을 때, 대중들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그 무대는 2위를 기록했다. 그때의 이소라는 대중들에게 '브랜드 뉴 이소라'였던 것이다. 신선함에 목말랐던 대중들은 그 무대에, 그리고 이소라라는 보컬리스트의 넓은 음악적 역량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대중이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 가지 관점으로 고정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그 아티스트가 대중적 인기를 많이 얻는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되는 순간, 아티스트는 대중이 원하는 대로만 작품을 내놓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결국 대중들도 그 아티스트에게 싫증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많이 얻은 보컬리스트인 이소라는 어쩌면 자신이 대중들의 뇌리에 오래 남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고, 새로운 것들을 내놓으려 하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 앨범을 끝으로 아홉 번째 정규 앨범 소식은 베이퍼웨어가 되어 있다. 2016년 [그녀풍의 9집]이라는 이름으로 선공개되었던 김동률 작곡의 발라드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끝으로, 9집에 대한 그 어떤 언급조차 없다. 어쩌면 9집은 저 곡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게 사실이라면 과연 '그녀풍의 9집'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소라의 다음 앨범을 기다리는 대중들은 많이 있다. 이 8집 앨범을 통해 자신이 오래도록 대중들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고 계속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 이소라의 의도였다면, 이 앨범은 흥행 실패작이 아니라 흥행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이소라의 디스코그래피 중 최고의 성공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블로그 오른쪽 상단 구독하기 버튼을 누르시면 더 많은 자료와 새로운 정보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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