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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스티비 원더 특집 [4]아티스트 집중 조명/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 2019. 1. 27. 00:19728x90반응형
#4.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는 거장이 되다 (1979-1995)
꽃을 피우고 나면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질서이듯, 스티비 원더의 음악 인생 또한 그 질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아름다운 꽃으로 한 세월 머무르다 덧없이 져 버리는 것이 아닌, 과육 충만한 열매로 변모하여 또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비 원더의 80년대는 변화와 확장이라는 키워드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Journey Through The Secret Life Of Plants (1979)
스티비 원더는 자신의 커리어를 대중음악이라는 한 영역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이 영화의 음악감독을 자처하며, 생애 처음으로 영화음악 앨범을 제작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1979년에 발표된 이 앨범, 'Journey Through The Secret Life Of Plants'이다.
영화음악이다 보니 그의 주무기인 보컬보다는 연주 쪽에 무게가 많이 실려 있는 앨범으로, 어떻게 보면 뉴에이지 앨범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스티비 원더는 분명 R&B와 소울을 주로 하는 흑인음악 뮤지션인데도 불구하고 뉴에이지의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건, 스티비 원더가 얼마나 넓은 음악적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겠는가.
그리고 이 앨범에는 그의 수많은 히트곡 중 하나인 'Send One Your Love'가 수록되어 있다. 70년대 말, 80년대 초라는 시대를 떠올려 보라. 지금에 비하면 엄청난 옛날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 곡을 들어보면 요즘 나온 곡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연주와 편곡에서부터 보컬 어레인지까지 그야말로 완벽하다.
'Send One Your Love' 말고도 숨은 명곡이 있어 조금 더 추천하고 싶다. 1CD의 4번 트랙인 'Same Old Story'와 8번 트랙 'Power Flower', 그리고 2CD의 6번 트랙 'Come Back As A Flower'이다. 특히 'Come Back As A Flower'는 스티비 원더가 메인 보컬 대신 코러스를 맡았고, 메인 보컬은 특이하게도 이혼한 전 부인인 시리타 라이트가 맡았다. 이혼하고도 음악적으로 교류를 계속 이어 나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Hotter Than July (1980)
이듬해인 1980년, 스티비 원더는 오랜만에 정규작을 내놓는다. 이름하여 'Hotter Than July'. 이 앨범도 70년대에 나온 앨범들 못지않은 명반이며, 들으면 누구나 알 정도의 유명한 히트곡들도 아주 많이 수록되어 있는 앨범이다. 밥 말리(Bob Marley)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담아 만든 레게 곡 'Master Blaster (Jammin')',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커버되고 있는 명발라드 'Lately',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곡 'Happy Birthday'를 비롯하여, 'All I Do', 'I Ain't Gonna Stand For It', 'As If You Read My Mind' 등의 숨은 명곡들도 많다.
Original Musiquarium (1982)
사실 이 앨범은 스티비 원더의 한 시대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발표한 베스트 앨범인데, 이 앨범에도 주목할 만한 신곡들이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Brown Eyed Soul),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등에 의해 리메이크된 바 있던 명곡 'Ribbon In The Sky'가 바로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등이 참여하여 만든 10분이 넘는 대곡 'Do I Do' 또한 이 앨범에서 놓쳐서는 안 될 필청 트랙이다.
The Woman In Red (1984)
'Journey Through The Secret Life Of Plants' 이후로 스티비 원더는 또 한 번 영화음악 제작을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 앨범의 수록곡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로 명실상부 R&B/소울의 거장이자 최고의 팝 스타로서 명성을 완전히 굳히게 된다. 한국에서도 이 곡이 매우 히트하였고, 한국의 국민가수 김건모에 의해 다시 한 번 재조명받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는 'Love Light In Flight', 'It's You', 'Weakness' 등을 추천하는 바이다. 특히 'Love Light In Flight'에서는 스티비 원더의 특장점인 송곳처럼 딱딱 내리꽂는 고음을 매우 선명하게 듣고 느낄 수 있다.
In Square Circle (1985)
1980년 'Hotter Than July' 이후 아주 오랜만에 발표한 정규작, 'In Square Circle'이다. 이 앨범도 개인적으로 아주 애정이 많이 가는 앨범인데, 우선 앨범 커버가 무척 매력적이다. 'Talking Book' 이후 또 한 번 흙바닥에(?) 주저앉으셨는데, 이번에는 지구의 흙바닥이 아닌 LP 레코드판이 올려져 있는 외계 행성의 흙바닥이다. 어떤 의미일까. 지구는 잡았으니 이제 외계를 잡으러 간다는 뜻일까?
웃자고 한 얘기였고, 슈가렛이 이 앨범을 아끼는 진짜 이유는 아무래도 곡이 좋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앨범에도 정말 좋은 곡이 많다. 개그콘서트의 엔딩곡(이자 월요일을 알리는 노래)으로 유명한 'Part Time Lover', 아름다운 멜로디의 발라드 'Overjoyed'와 같은 히트곡들을 비롯하여, 디스코 리듬과 반복되는 리프로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I Love You Too Much', 장중한 분위기와 독특한 곡 진행으로 상당히 매력 있게 표현된 'Whereabouts' 등을 추천한다.
정신없이 앨범들을 꺼내 듣다 보니 80년대 중반으로 왔는데, 이 앨범에서 문득 깨닫게 된다. '아니, 또 이렇게 변화한 거야? 어느새?' 그렇다. 스티비 원더는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갈 때도 충격적인 음악적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70년대에서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또 한 번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그 변화 양상을 가만히 읽어보면, 시대의 요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0년대 그의 음악이 변화하게 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 요소가 신디사이저였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신디사이저의 활용을 두고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많았지만, 어쨌든 대중들은 신디사이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운드에 대해 호의적이었고, 그러한 새바람을 타고 변화를 수용했던 뮤지션들은 거의 대부분 성공을 거머쥐었다. 스티비 원더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80년대는 디스코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려운 음악을 듣지 않았다. 음악을 통해 고뇌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춤추고, 웃고, 즐기고 싶었다. 스티비 원더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본인의 음악에 디스코의 요소들을 많이 도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Characters (1987)
개인적으로는 스티비 원더의 정규작들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낮은 앨범이 아닐까 생각하는 'Characters' 앨범이다. 스티비 원더가 음악 잘한다는 사실은 말하기도 입아플 만큼 이미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앨범이 아닐까 조심스레 말해 본다.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슈가렛은 이 앨범을 통해 어떤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단 한 가지 있다면 7번 트랙 'Get It'에서 마이클 잭슨과 듀엣으로 노래했다는 것인데, 솔직히 그마저도 마이클 잭슨의 'Bad' 앨범에 있는 'Just Good Friend' 쪽이 훨씬 듣기 좋다고 생각한다.
Jungle Fever (1991)
통산 세 번째 영화음악 앨범, 'Jungle Fever'의 발매를 통해 스티비 원더의 90년대가 열리게 된다. 80년대가 디스코였다면 90년대는 뉴 잭 스윙이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빠르게 변하는 유행이지만 스티비 원더는 개의치 않았다. 그냥 적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진 그에게는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앨범에서 슈가렛이 가장 좋아하는 트랙은 1번 트랙 'Fun Day'이다. 왜 아이러니하냐면, 이 곡은 시대의 흐름인 뉴 잭 스윙의 색깔이 하나도 가미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느낌을 따지자면 시티팝의 분위기랄까. 곡의 분위기가 무척 도시적이고 세련되어 있다. 꼭 한 번 들어보길 추천한다.
Conversation Peace (1995)
90년대의 마지막 앨범인 'Conversation Peace'인데, 이 앨범에서는 뉴 잭 스윙의 요소들을 전작에 비해 조금 더 가미한 듯하다. 이 앨범에서 추천할 만한 곡은 스티비 원더의 90년대를 대표하는 곡으로, 후반부 전조가 아주 인상적인 아름다운 발라드 'For Your Love'나 통통 튀는 리듬감이 매력적인 'Tomorrow Robins Will Sing', 몽환적이며 오묘한 인상을 자아내는 'I'm New', 뉴 잭 스윙의 흥취를 잔뜩 머금은 'Rain Your Love Down' 등이 있다.
스티비 원더의 이러한 카멜레온 같은 변신 능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렇게 대중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응할 수 있는 중견 뮤지션이 흔할까? 한국의 상황과 대조해 본다면, 한국 대중음악의 거장 조용필이 10년 만에 정규 19집을 통해 모던 록 'Bounce'라든지, 무려 래퍼 버벌진트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화제가 된 'Hello' 등을 내놓으며 전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던 것과 흡사하지 않을까.
스티비 원더를 보면, 거장이 되기까지의 과정보다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고 나서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물론 거장이 된다는 것 자체도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거장이 되고 나서 그 자리를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하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스티비 원더가 전세계의 수많은 뮤지션들과 팬들에게 아직까지도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본인의 음악적 철학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며 앞으로, 앞으로만 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면 기꺼이 배우려 하고 언제든 낮은 자세로 임하려 하는 것 말이다.
스티비 원더는 이 앨범을 끝으로 90년대에는 더 이상 정규작을 발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이브 무대에서 종종 팬들과 만나며 소통하고, 후배 뮤지션들과 음악적으로 교류하며 지내게 된다. 그가 다시 정규작을 발표하는 시점은 2005년으로, 무려 이 앨범이 발표된 지 10년 만의 정규작이다. 이 앨범부터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오늘은 스티비 원더, 루더 밴드로스, 디온 워윅, 휘트니 휴스턴 이렇게 네 사람의 아름다운 하모니로 다시 불린 'That's What Friends Are For'의 라이브 영상을 보며 마무리하겠다. 슈가렛이 한창 스티비 원더, 루더 밴드로스 등에 빠져 있을 때 이 영상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모른다. 꼭 한 번 보기를 권장한다.
See You Tomorrow, Every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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