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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스티비 원더 특집 [2]아티스트 집중 조명/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 2019. 1. 24. 17:00728x90반응형
#2.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하다 (1967-1971)
그는 이제 더 이상은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리틀 스티비도 아니었다. 그는 이제 어엿한 청년 스티비 원더가 되어 있었다. 스티비 원더는 앨범 'Up-Tight'과 'Down To Earth'를 발표한 1966년을 뒤로 하고 그 이듬해(1967) 8월, 앨범 'I Was Made To Love Her'를 내놓는다.
I Was Made To Love Her (1967)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 'I Was Made To Love Her'는 마빈 게이(Marvin Gaye)와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스타일을 혼합한 듯한 느낌의 소울 곡으로, 스티비의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보컬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 앨범에서부터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되는데, 변성기를 겪은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고음 애드립을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내공이 참으로 놀랍다. 겨우 17세의 나이에 이 정도로 높은 음악적 성취를 경험한 뮤지션은 대중 음악계에서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전작인 'Up-Tight'의 하이엔드 버전처럼 여겨진다. 'Up-Tight' 앨범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도 모타운 특유의 흥겨운 소울 풍 곡들이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데, 소울 레전드들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한 시도들이 흑인음악의 짙은 색채를 더욱 강하게 부각한다.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Respect'나 템테이션스(The Temptations)의 'My Girl', 레이 찰스의 'A Fool For You', 제임스 브라운의 'Please, Please, Please' 등이 그러하다.
Someday At Christmas (1967)
같은 해 11월, 스티비 원더는 생애 첫 크리스마스 앨범인 'Someday At Christmas'를 발표한다. 격정적으로 내뱉는 기존의 보컬을 절제하고, 솜사탕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아름답게 노래하는 스티비 원더를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캐롤 앨범이다. 특히 앨범의 포문을 여는 'Someday At Christmas'는 2015년, 애플 아이폰 광고의 BGM으로 사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소울 싱어인 안드라 데이(Andra Day)와 환상적인 듀엣으로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앨범의 말미에는 최근 들어 존 레전드(John Legend), 씨로 그린(Cee-Lo Green), 펜타토닉스(Pentatonix) 등에 의해 자주 리메이크되고 있는 'What Christmas Means To Me'도 수록되어 있는데, 리메이크 버전으로 먼저 이 곡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원곡의 파워를 새삼 느껴보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같다.
Eivets Rednow (왼쪽), For Once In My Life (오른쪽), (1968)
1968년, 스티비 원더는 두 장의 앨범을 각각 11월, 12월에 발표한다. 그의 넘치는 생산 욕구란! 'Eivets Rednow' 앨범은 12살 때에 그를 세상에 내보내 준 앨범인 'The Jazz Soul Of Little Stevie' 이후 오랜만에 연주곡으로 채운 앨범이다. 다만 어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체적인 완성도가 매우 높다. 정교한 편곡과 장중한 세련미까지 갖추고 있는 이 앨범은 약관의 젊은이가 발표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걸작이다. 스티비 원더가 단순히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이기만 한 것이 아닌, 흑인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연주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주는 고마운 앨범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Eivets Rednow'라는 앨범 제목은 본인의 이름 'Stevie Wonder'를 알파벳 역순으로 재배열한 것이다. 앨범 제목의 작명 센스마저도 그의 예술가적 면모가 돋보이는 듯하다.
바로 다음 달에 세상 빛을 본 'For Once In My Life' 앨범은 불멸의 히트곡 'For Once In My Life'를 위시하여 훵크의 터치를 가미한 'Shoo-Be-Doo-Be-Doo-Da-Day', 점차 격앙되는 보컬 표현이 인상적인 소울 넘버 'I Don't Know Why (I Love You), 보니 엠(Boney M)의 명곡을 리메이크한 'Sunny' 등이 필청 트랙이다.
이 앨범의 경우 앞서 발표했던 'Up-Tight'이나 'I Was Made To Love Her' 앨범에서보다는 표현이나 분위기 면에서 약간은 정제된 듯한 느낌을 준다. 화려한 드럼 필인(Fill-in)을 절제하고, 음악 자체가 주는 그루브에 조금 더 집중하여 스티비 원더가 가진 최고의 강점인 리듬감이 온전히 살아 꿈틀댄다.
스티비 원더의 음악이 여타 뮤지션들의 음악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보컬이란 악기는 분명 멜로디를 그리는 악기인데, 스티비 원더가 노래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멜로디와 리듬을 함께 그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실로 엄청난 내공이 아닐 수 없는데, 더 무섭고 소름 돋는 건 이러한 내공은 그가 세상에 처음 나타났던 12살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천재들의 세계란 실로 심오하고도 무시무시한 것이로다...)
My Cherie Amour (1969)
스티비 원더가 이 앨범에서 또 변화를 시도했다. 아니, 어쩌면 직전작인 'For Once In My Life'에서 이미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R&B 사운드에 달콤한 러브 송의 무드를 가미했던 'For Once In My Life'에서도 스티비 원더의 로맨티스트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번 'My Cherie Amour'에서는 그 달콤함이 조금 더 심화되었다고 보면 된다. 어쩜 이렇게 사랑을 달콤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My Cherie Amour'의 경우 세상에 나온 지 햇수로 무려 50년이나 되는 오래된 노래인데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도 전혀 촌스럽거나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좋은 노래가 주는 감동은 시간이 많이 흘러 빛은 바래져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앨범에서는 타이틀곡 'My Cherie Amour' 말고도 또 다른 히트곡인 'Yester-Me, Yester-You, Yesterday'가 함께 수록되어 있으니 절대 놓치지 마시길.
자신의 정규작에 꼭 리메이크곡을 수록해 왔던 스티비 원더는 이번 앨범에서도 어김없이 몇 곡의 리메이크곡을 실었다. 에타 제임스의 원곡인 'At Last'나 토니 베넷(Tony Bennett)이나 마빈 게이 등이 불렀던 재즈 스탠더드 넘버 'The Shadow Of Your Smile' 등은 동류의 것이니 그렇다 치지만, 파격적인 시도가 있다. 바로 사이키델릭 록 밴드인 도어스(The Doors)의 원곡인 'Light My Fire'의 리메이크가 그것이다.
도어스는 다들 아시다시피 6~70년대가 낳은 진정한 탕아인 짐 모리슨(Jim Morrison)을 필두로 한 사이키델릭 록 밴드인데, 그들의 가장 유명한 곡인 'Light My Fire'를 스티비 원더 버전으로 새롭게 만든 것이다. 들어 보면, 놀랍게도 그 강렬한 원곡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자신의 스타일로 곡을 녹여냈다.
Signed, Sealed, Delivered (왼쪽, 1970), Where I'm Coming From (오른쪽, 1971)
사실 'My Cherie Amour' 앨범으로 스티비 원더의 1960년대가 끝나고, 1970년이 되면서 스티비 원더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기는 하지만, 나의 경우 1972년을 기점으로 엄연히 분리를 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1970년에 발표한 'Signed, Sealed, Delivered' 앨범의 경우 1960년대에 발표했던 음악들의 색깔에서 크게 벗어난 부분이 없이 그 연장선을 따라가고 있는 작품이고, 1971년 작인 'Where I'm Coming From'의 경우 신디사이저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실험 차원에서 비교적 소심(?)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스티비 원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앨범이라고 평가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1970년 작인 'Signed, Sealed, Delivered' 앨범은 가스펠의 향기를 가득 머금은 작품이다. 앨범의 첫 트랙 'Never Had A Dream Come True'라든지, 'Heaven Help Us All' 같은 곡들을 들어 보면 그 동안 스티비 원더가 노래해 왔던 숱한 사랑 노래와는 그 격을 달리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레이 찰스가 커리어 초창기에 시도했던, 가스펠과 R&B를 섞는 작업과 동일선상에 있는 시도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 레이 찰스가 신성모독 논란 등에 시달렸던 것과는 달리, 스티비 원더에게는 그러한 잡음이 없었다는 것이 대조적이기는 하다.
이 밖에도 비틀즈(The Beatles)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We Can Work It Out',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 'Signed, Sealed, Delivered (I'm Yours)' 등은 이 앨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필청 트랙이다.
1971년에 발표한 'Where I'm Coming From'은 60년대와 70년대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앨범으로 바라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두 시대가 만나 이루는 교차점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그러한 표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악기가 바로 신디사이저이다. 신디사이저란 전자발진기를 이용하여 온갖 음을 자유로이 합성할 수 있도록 고안한 악기(정의 출처: 두산백과)로서, 1960년대의 스티비 원더 음악에서는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던 악기이다.
신디사이저의 발명으로 인해 음악계에는 지각 변동과도 같은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급물살을 타고 스티비 원더 또한 자신의 음악적 지평을 넓히기 위해 과감히 신디사이저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 앨범은 신디사이저 사용 없이 편곡된 곡들과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곡들이 혼재하며,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앨범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상대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히트곡이 부족하기 때문에 앨범 자체의 존재감은 약한 편이다. 그나마 'If You Really Love Me'나 'Never Dreamed You'd Leave In Summer'와 같은 곡들이 주목받기는 했지만, 후자의 경우 앨범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가 곡이 발표된 지 40여 년이 지난 뒤인 마이클 잭슨 영결식에서 부르며 새삼 화제를 모았던 것인지라...
하지만 71년 작이 없었더라면 다음 편에서 후술하게 될 그 화려한 시절을 맞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스티비 원더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1972년부터의 이야기는 내일로 이어지게 된다. 오늘은 스티비 원더와 톰 존스가 듀엣으로 부르는 메들리를 감상하며 마무리하겠다.
See You Tomorrow, Every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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