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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우한 명작이 되어버린 에릭 베네(Eric Benet)의 정규 3집 앨범, [Hurricane]
    명반 산책 2020. 2. 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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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ric Benet (에릭 베네) - Hurricane (2005)

     

    Eric Benet - Hurricane (2005)

    '불후의 명곡'이라는 말을 참 많이도, 흔하게도 쓴다. 이 앨범에는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뜻의 '불후(不朽)'보다는 딱하고 어려운 처지를 뜻하는 '불우(不遇)'를 붙여서 '불우의 명곡'이라는 수식어를 써야 할 것 같다. 주옥같은 명곡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 명반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악재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앨범은 빼어난 가창력을 가진 R&B 보컬리스트, 에릭 베네(Eric Benet)의 정규 3집, [Hurricane]이다.

     

    에릭 베네(Eric Benet)

    에릭 베네는 1966년 10월 15일,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자그마치 5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중후한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Benet'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누나인 리사와 사촌인 조지를 대동하여 그룹을 결성하고, 1992년에 앨범을 발표하여 소정의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그러다 워너 브라더스와 솔로 계약을 하고, 1996년 첫 솔로 앨범인 [True To Myself]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첫 솔로 앨범 [True To Myself]에서는 록킹한 사운드도 과감히 시도하고, 소울 클래식에 대한 경외를 자신의 음악에 많이 투영했다. 그러다 약 3년 간의 재정비를 거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A Day In The Life (1999)]에서는 네오 소울 느낌을 가미하여 훨씬 더 정제되고 다듬어진 모습을 보였다. 여담이지만 두 번째 앨범은 에릭 베네의 커리어 사상 최고로 성공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다음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무려 6년이라는 긴 공백기에 들어가게 된다.

     

    아티스트로서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지만, 개인사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던 에릭 베네. 그는 이 3집 앨범 [Hurricane]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결혼과 이혼이라는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모두 겪게 되었다. 배우 할리 베리(Halle Berry)와 2001년, 결혼하게 되었지만 결국 2년 뒤인 2003년 결별하게 된 것. 에릭은 할리를 떠나보낸 슬픔과 상실감을 앨범에 담았고, 결과적으로는 아주 애수 짙은 발라드 넘버들이 많이 수록된 앨범이 되었다. 이것은 그에게 득이었을지, 독이었을지.

     

    결과적으로 보면, 앨범의 퀄리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말 잘 만든 앨범이 되었다. 그러나 이 앨범은 발표 당시 미국의 대중들에게는 결코 환영받지 못한 결과물이었다. 소울의 레전드로서의 행보를 예상했던 에릭 베네가 갑자기 팝 발라드 풍의 노래들을 들고 나왔으니 그 변화가 반갑지 않았던 것.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미국을 강타했던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피해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Hurricane'이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불렀어야 하니... 활동에 제약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아티스트 본인의 음악적 방향 선회로 인해 전작과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 버린 음악과, 하필이면 그해 발생한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관련된 천재지변으로 활동을 미약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때문에 2005년은 에릭에게 큰 아픔을 준 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랄까. 한국 팬 한정으로, 이 앨범은 에릭 베네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 감성을 자극하는 애수 짙은 분위기,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풍겨오는 마이너 뽕삘(?)까지, 한국 팬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는 고루고루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타이틀곡 [Hurricane]을 비롯하여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이는 [My Prayer], 스탠더드 재즈 풍의 [The Last Time], 가슴 저릿한 발라드 [Cracks Of My Broken Heart], 잔잔하고 감미로운 [Still With You]까지 모두 한국 대중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아름다운 노래들이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 당시 에릭 베네의 공연 사진.

    이 앨범 덕분에 에릭 베네는 내한도 자주 하게 되었고, 여러 한국 아티스트들과의 협업도 가능하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작곡가 박근태의 제안으로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데뷔곡인 '정말 사랑했을까'를 리메이크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에릭 베네에게 3집 앨범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알게 해 준 애증의 앨범이 아닐까 한다. 비록 자국의 대중들은 설득하지 못했지만, 한국이라는 블루오션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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