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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가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공지사항 및 자유게시판 2022. 3. 6. 23:47728x90반응형
이런저런 생각들이 문득 들어 이렇게 또 모니터 앞에 앉았다.
내게 주어진 일 중에서, 공식적인 업무 말고 취미와 같은 여가 활동들에 대한 생각이다.
음악이라는 것이 참 얄궂은 운명을 타고나서, 대개는 듣는 이의 어떤 찰나에 잠시 머무르다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
너무도 많은 새로운 음악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그러다 보니 철 지난 음악들은 골방 한켠으로 덧없이 밀려나고 만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밀려나는 음악들에 대해서, 또 음악이라는 분야가 가진 그 얄궂은 운명에 대해서 연민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블로그를 만들고, 사람들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음악을 '그래도 이건 이래서 들을만한 음악이야'라고 외롭게 외쳐왔다.
그러니까 나는 본질적으로, 트렌디해질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게 남들이 볼 때는 조금 독선적이게 보이거나 아니면 좀 덜 멋지게 보일지라도 나는 그냥 내 페이스대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인 것이다.
태생부터가 그러했다. 취향이나 그것을 향유하는 방식이 결코 보편적일 수는 없을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운명이라면야 어쩌겠냐 싶지만, 이제는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는지라 이 또한 힘에 부칠 때가 많다.
나의 삶과 음악은 이제 어떤 방식으로 연관을 맺게 될까.
한때는 나의 전부와도 같았던 음악.
20년 동안 엎치락뒤치락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다가 지금은 얘가 어쩌고 있는지조차 파악이 어려운.
음악.
이렇게 철저히 나의 배경으로 물러나며 너는 본연의 운명대로 찰나에 머무르다가 언젠가 잊혀지게 되는 걸까.
설령 그렇다 해도 이제 정말 나는 상관없을까.
내가 여지껏 살아오며 좋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음악을 기억할 수 있는 저장창고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마치 아카이브처럼, 명확한 카테고리를 나누어서 정리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들어볼 수 있다면.
이 공간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 '20년 전 음악 이야기'라는 콘텐츠를 통해 고작 2002년 한해의 가요만을 나름대로 정리했다. 그렇게 하는 데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제법 썼는데, 무려 '나만의 아카이브'를 만든다라? 어불성설이다. 엄두가 안 난다.
얼마 전 '글렌체크'의 정규 3집 [Bleach]를 듣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글을 써 보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어느 정도의 실패였냐면,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의미 없는 문장 몇 줄을 썼다 지웠다를 몇 번 반복하다가 이내 업로드 창을 닫아 버렸다. 내게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어떤 앨범에 대해서 글을 쓰고자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그 완성도는 차치하더라도) 반드시 써냈었다. 이렇게 단 한 자도 써내지 못하고 업로드를 포기한 적은 블로거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왜 글을 쓰지 못했을까.
모니터 앞에 앉았던 그때 당시를 떠올려 보면, 글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상황은 맞다. 하지만 그 일시적인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 어떤 앨범을 소재로 하더라도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소위 말해 '밑천이 드러났다'.
이제 '다작'은 의미가 없다. 무언가에 쫓기듯 휘갈기며 써내던 지난날의 나를 통렬하게 반성한다. 나는 나를 지나치게 소모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닳고 닳아 더는 아무것도 자를 수 없는 칼이 된 것만 같다.
공부가 필요하다. 더 날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겠다. 책도 많이 읽고, 좋은 문장은 필사도 해 보며 기본을 다시 다잡아야겠다. 시간에 쫓기지 않겠다. 마음대로 휘갈기지 않겠다. 그것이 음악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최선의 예우이고, 나의 양심에 미안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늦게나마 깨닫게 되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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