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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 1. 러브홀릭(Loveholic) - Rainy Day노랫말 곱씹으며 듣기 2021. 7. 7. 12:35728x90반응형
* 앨범 커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음악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어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하루종일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늘도 비가 온다. 진정, 장마가 성큼 다가와 버렸다. 이런 날 밖에 있었다면 옷도, 신발도, 양말도 죄다 젖어버려서 짜증이 많이 났을 것 같은데, 다행이도 내가 하는 일은 실내에서 하는 일이라 젖을 걱정 없으니 천만 다행이다.
그렇다 보니 빗소리를 들으며 감상에 젖을 여유까지도 선물받게 되었는데, 으레 그런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면 비와 함께 듣기 좋은 여러 노래들이 떠오른다. 이런저런 멜로디들을 흥얼거리다, 오늘 문득 내 마음이 멈춘 곡은 바로 러브홀릭의 'Rainy Day'이다. 이 노래는 2003년에 발표된 러브홀릭의 데뷔 앨범 [Florist]의 3번 트랙에 수록되어 있다.러브홀릭은 강현민, 이재학, 지선으로 구성된 3인조 밴드였고, 몽환적이면서도 달콤한 분위기의 음악들을 선보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얼마 전 성황리에 종영한 JTBC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에 러브홀릭의 보컬 '지선'이 2호 가수로 출연하여 소소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기량을 많이 잃어버리는 보컬들도 많은데, 지선의 경우 전성기 때의 음색과 가창력을 손상 없이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럼, 본격적으로 노래를 한 번 들어 보자. (작사, 작곡, 편곡 강현민)
Cause, rainy day.
그래서 한껏 울 수 있던 날.
아무런 말,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널 보냈던 날.
영원히 나의 기억 속에서 가장 슬픈 날이 된 그날.
남자와 이별하게 된, 비 오던 어느 날을 자신의 기억 속에서 가장 슬픈 날로 여기고 있는 여자가 있다. 이 여자는 비가 올 때마다 그날의 슬펐던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얼마나 깊게 사랑했는지, 또 그만큼 얼마나 아프게 이별했을지. 짧은 한 대목에서부터 쉽사리 느낄 수 있다.
It’s rainy day.
힘들게 이별을 말했던 날.
가엾은 난 한없이 초라해져 눈물만 흘렸던 날.
하늘도 나의 맘을 위로해 끝도 없이 울어준 그날.
이별을 말하는 남자의 입장이 힘들었을 거라는 것도 여자는 알고 있다. 그래서 붙잡지는 못하고 하염없이 울고만 있다. 이별을 통보받는 상황에서 넝마가 되어버린 여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리는 비와 함께 오로지 우는 수밖엔 없다. 그리고는, 목소리가 남자의 것으로 바뀐다.
이젠 날 가게 하세요
여기서 멈춰서요
늘 난 그대의 곁자리를 서성일 뿐
한번도 내 사랑임을
또 난 그대 것임을
느끼지 못한 날 원망했었죠
남자의 입장에서도 힘들었을 순간들이 엿보인다. 여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겉만 뱅뱅 도는 것 같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사랑을 하다 보면, 으레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면 오해가 쌓이게 되고, 헤어지게 되는 순간까지 와서야 서로의 마음이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슬프게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 남자는 여자와 터놓고 대화할 생각은 못하고, 자신을 원망하며 마음속에 돌탑을 쌓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심하고, 사랑에 서툰 소년의 모습이 엿보인다. 다시 여자의 목소리로 돌아간다.
It’s rainy day.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널 보냈던 날.
아픈 내 눈물도 비가 되어 네게 보이지 못한 그날.
그렇다. 여자 입장에선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을 것이다. 남자는 혼자 느끼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오해하다 별안간 여자에게 이별의 말을 건넸다. 마침 내리는 비는 여자의 눈물을 감춰 주었다. 남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자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다. 남자는 말한다.
이제 난 보내야 해요
이쯤에서 끝내요
늘 난 그대의 곁자리를 서성일 뿐
영원히 내 사람 아닌
절대 그럴 수 없는
나쁜 내 사랑을 버려야 하죠
남자는 단정짓고 있다. 영원히, 절대로 이 여자는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엇이 이 남자로 하여금 이런 결론에까지 다다르게 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자신이 내린 그 결론과 단정이 ‘나쁘다’는 것까지 남자는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맡은 남자가 이어서 마지막 말을 전한다.
이제 날 가게 하세요
여기서 멈춰서요
늘 난 그대의 곁자리를 서성일 뿐
한번도 내 사랑임을
또 난 그대 것임을
느끼지 못한 날 욕했던 나죠
남자는 기어이 여자를 보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탓하며 서사는 마무리된다.
구조를 분석하면, 여자의 시점을 현재로 놓고 남자의 목소리는 여자가 떠올린 이별하던 날, 즉 과거 회상의 목소리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이 노래 속에 등장하는 두 남녀의 모습을 보면, 사랑의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남자는 여자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남자가 되고 싶어 나름대로 애를 써 보지만, 아무래도 도통 그렇게 되질 않는 것 같아 보인다(그것조차도 여자의 생각이 아닌 남자 스스로의 생각이라는 것이 함정이다.).
여자 역시 남자를 사랑하는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사랑에 조금 천천히 빠지는 스타일인지라 무감한 척, 무심한 척 남자를 차근차근 지켜본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갑자기 이별을 통보한다. 남자가 떠난 뒤에도 사랑의 온도가 채 식지 않은 여자는 비 오는 날마다 이별의 장면을 떠올린다.
3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완벽한 서사를 갖춘 드라마를 담아냈다. 음악의 매력이란 이런 데서 오는 게 아닐까. 극도로 압축된 형식 안에 내용을 손색없이 옹골차게 담아냈을 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곡이 자전적인 경험을 소재로 했는지, 아니면 픽션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후자 쪽인 것 같지만 이젠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후자 쪽이라면 보컬의 표현력이 경이롭다. 이쯤되면 뛰어난 가수는 뛰어난 연기자이기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나는 철저히 경험에 기초해서 곡을 쓰고 있지만 그러다 보니 소재 면에서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하지만 노래에 감정을 싣기 좋은 쪽은 아무래도 이쪽이다.
첫 콘텐츠라 그런지 이것저것 참 많이도 지껄여 놓았다. 노래 한 곡에 이렇게 할 얘기가 많다. 다음 곡은 무엇이 될지, 나도 궁금하다. 앞으로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추신 : 이 글을 어제 올릴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현실에서의 과업 때문에 여의치 않다는 점이 안타깝다.728x90반응형'노랫말 곱씹으며 듣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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