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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 바리톤 보컬의 정석, 피보 브라이슨(Peabo Bryson)
    아티스트 집중 조명 2022. 9. 1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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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피보 브라이슨(Peabo Bryson). 이 사진을 누르면 피보 브라이슨의 대표곡 'Can You Stop The Rain'을 들어볼 수 있다.

    한동안 블로그에 발을 끊은 채 현업에 몰두하며 살다가,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 블로그를 다시 찾아왔다. 이렇게 글을 다시 쓰게 된 것은, 최근 빠져 있는 아티스트 한 사람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바로 하이 바리톤의 매력적인 음색을 가진 R&B 가수 피보 브라이슨(Peabo Bryson)이다.

    월트 디즈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왼쪽, 1991), 알라딘(Aladdin) (오른쪽, 1992). 피보 브라이슨은 두 작품 모두에 목소리를 보태었다.

    피보 브라이슨은 1951년 4월 13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에서 태어나 1976년 앨범 [Peabo]로 데뷔한 후, 칠순의 나이에도 아직까지 현역 가수로서의 커리어를, 그것도 매우 뛰어난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디즈니의 총애를 받은 가수(?)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 알라딘의 OST로 유명한 'A Whole New World'를 부른 그 사람 맞다. 이 밖에도 미녀와 야수의 OST인 'Beauty And The Beast'에서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즐겨 본 사람이라면 이 목소리만큼은 분명 익숙할 것이다.

    Roberta Flack - Softly With These Songs: The Best Of Roberta Flack (1993)

    내가 결정적으로 피보의 목소리에 꽂히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베스트 앨범을 들으면서이다. 로버타 플랙 또한 R&B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걸출한 보컬리스트이기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아주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7번 트랙으로 수록된 'More Than Everything'에서 소위 '뻑'이 가 버렸다. 두 사람의 환상적인 호흡도 물론이거니와, 피보 브라이슨이 그려내는 수려한 애드립 라인, 그리고 무엇보다 하이 바리톤만이 구사할 수 있는 멋들어지면서도 밀도감 높은 음색이 아주 그만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피보 브라이슨의 존재감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 하는 뼈저린 회한과 반성의 시간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피보 브라이슨의 앨범을 차례대로 하나씩 들어보는 중이다.

    피보 브라이슨의 커리어 초창기를 대표하는 앨범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Reaching For The Sky (1977)], [Crosswinds (1978)], [Paradise (1980)], [I Am Love (1981)], [Don't Play With Fire (1982)]

    커리어 초창기를 살펴보면 Soul과 Funk 사운드에 집중한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와 아이즐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 등을 연상케 하는 그루브한 밴드 사운드와 풍성한 코러스를 휘감고 도는 피보의 곧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듣는 이를 절로 황홀경에 젖게 한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젠틀하고 세련된 컨템포러리 R&B를 부르는 피보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생경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흑인음악의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피보가 이토록 짙은 소울 감성의 음악을 선보였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크나큰 재산일 것이다.

    왼쪽부터 로버타 플랙과 함께 만든 콜라보레이션 앨범 [Born To Love (1983)], [Straight From The Heart (1984)], [Take No Prisoners (1985)]

    이 시기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이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다. 바로 로버타 플랙과 도니 해서웨이 이야기이다. 로버타 플랙에게는 사실 도니 해서웨이(Donny Hathaway)라는 걸출한 음악 파트너가 있었다. 그러나 도니는 1979년 1월, 평소 앓고 있던 우울증으로 인해 호텔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도니와 영혼의 교감을 이루었던 로버타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져 내릴 수는 없는 법. 1983년, 피보 브라이슨은 로버타 플랙과 함께 손을 맞잡고 콜라보레이션 앨범을 발표한다. 앨범 제목은 [Born To Love]. 로버타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던 도니가 굵직한 바리톤 음색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두 번째로 선택한 듀엣 파트너로 피보 브라이슨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피보 브라이슨은 도니 해서웨이가 살아 돌아온 것과 같은 발군의 보컬 역량을 뽐내면서 도니의 빈자리를 유감 없이 채워냈다. 특히 이 앨범에 수록된 'Tonight I Celebrate My Love For You'는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로맨틱한 러브 발라드이다. 이 곡으로 피보 브라이슨은 컨템포러리 R&B 가수로서의 행보를 개척하는 데에도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이어지는 두 앨범 [Straight From The Heart]와 [Take No Prisoners]는 그다지 인상적인 느낌의 작품들은 아니었다. 피보 브라이슨의 놀라운 보컬 역량 이외에는 별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없는 무난한 앨범들이었달까.

    왼쪽부터 [Quiet Storm (1986)], [Positive (1988)], [All My Love (1989)]

    앨범 [Quiet Storm]부터 피보 브라이슨은 완전히 컨템포러리 R&B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다지려는 듯 보였다. 세련미가 돋보이는 사운드와 깔끔하게 정돈된 보컬 스타일은 이제 정말 70년대의 소울풀했던 피보 브라이슨과는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보컬의 역량이 너무도 뛰어났기에,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표현이 가능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어쨌든 컨템포러리 R&B 특유의 무드와 아름다운 멜로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시기의 피보 브라이슨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989년에 발표한 [All My Love]에 수록된 곡들은 그야말로 '멜로디의 승리'라고 불리울 만큼 아름다운 곡들이 가득 실려 있다.

    왼쪽부터 [Can You Stop The Rain (1991)], [Through The Fire (1994)], [Unconditional Love (1999)]

    90년대에 들어오면서 피보 브라이슨의 음악 세계도 더욱 견고해지고, 확고해지는 듯한 인상을 보인다. 특히 1991년에 발표한 앨범 [Can You Stop The Rain]의 동명 타이틀곡 'Can You Stop The Rain'을 꼭 들어 봤으면 좋겠다. 내게 피보 브라이슨의 보컬리스트로서의 진가를 가장 처음 알려준 곡이다. 이 곡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고독감과 슬픔, 애절함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보컬리스트가 듣는 이의 감성을 어떤 방식으로 자극하는지, 보컬리스트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연구해야 할 요소일 것이다.

    1994년, 샤카 칸(Chaka Khan)의 명곡 'Through The Fire'를 리메이크하여 발표한 앨범 [Through The Fire]도 아주 높은 퀄리티의 앨범이고, 가스펠의 색채를 다소 풍기는 1999년작 [Unconditional Love] 또한 수작이다. [Unconditional Love]에는 역시 샤카 칸의 곡 'Ain't Nobody'를 비롯하여 직속 선배 격인 도니 해서웨이의 명곡 'A Song For You'도 피보 브라이슨 스타일로 멋지게 재해석되어 있다.

    왼쪽부터 [Missing You (2007)], [Stand For Love (2018)]

    이제 후반기 커리어의 앨범들만 남겨놓고 있다. 이 두 앨범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원래 앨범을 듣지 않고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철칙이었지만, 앞으로 철칙 같은 것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지금 피보 브라이슨에게 지독하게 꽂혀 있고, 당분간은 그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넘실대는 바다에서 철지난 서핑을 신나게 할 생각에 설레고 있을 것만 같다. 두 앨범에 대한 평은 나의 기대감으로 대신하고 슬슬 마무리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덧붙이자면, 하늘을 찌를 듯한 고음과 화려한 기교만이 보컬의 답이라고 착각하는 수많은 보컬 지망생들에게 피보 브라이슨을 권하고 싶다. 물론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처럼 고음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큰 고민 없이 고음을 자신의 장점으로 삼아 연습을 해나가면 되겠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고음이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고음이 답이라고 계속해서 강요한다면, 어떻게 노래할 수 있겠는가?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노래를 하며 음악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피보 브라이슨이 구사하는 하이 바리톤 음색의 밀도와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기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급스럽다. 그리고 무려, 피보 브라이슨의 음역대도 결코 좁은 것은 아니다. 하이 바리톤이 내는 고음의 길을 알고 싶다면, 피보 브라이슨이 좋은 힌트가 되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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